[이태상의 항간세설] 글쓰기와 표절 시비

이태상

입력시간 : 2020-03-26 10:16:35 , 최종수정 : 2020-03-26 11:32:02, 편집부 기자

 


몇 년 전 한국에선 신경숙 소설가의 표절 시비가 있었다. 신경숙 씨 표절 의혹은 1999년에 처음 나왔다고 한다. 컴퓨터와 전자 매체의 일상화로 종이책과 신문 등 인쇄 매체가 사양길에 들었다지만 한 자() 한 자() 자신이 직접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어 전문가들이 쓴 글쓰기 노하우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흔히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비결은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한다. 생각 좀 해보면 어떤 언어이든 우리 모두 어려서 듣고 따라 하며 배운 게 아닌가. 그렇다면 언어를 배워 사용한다는 사실부터가 표절행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언어뿐만 아니라 영어로 ‘Practice makes perfect’라고 하듯이 오랜 연마와 연습을 통해 어떤 일에서든 달인(達人)과 명인(名人) 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나, 해 아래 새것이 없도다. (What has been will be again, what has been done will be done again: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Ecclesiastes 1:9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이 잘 알려진 성경 구약 성서 전도서 구절처럼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전에 있던 일, 다른 사람들이 해 온 일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모방해서 반복하게 마련 아닌가. 다만 각자는 각자 대로 제 식으로 제 스타일로 변주(變奏)하게 되는 것이리라.

 

일정시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해 일학년 담임 일본인 여선생님께서 첫 수업시간에 해주신 말씀을 나는 평생토록 잊지 않고 살아왔다. 세 가지 학생이 있는데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낙제생,’ 시키는 대로 하는 모범생,’ 그리고 누가 시키기도 전에 본인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우등생이란 말씀이었다. 이 말을 좀 바꿔서 이렇게 표현해 볼 수도 있으리라. 다른 사람의 흉내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 기차도록 남의 흉내를 잘 내는 사람, 그리고 그 어느 누구의 흉내를 내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롤모델이 되는 사람이다.

 

이 세 번째 타입은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서쪽으로 몰려갈 때 동쪽으로 가는 사람, 남들이 다 덩달아 할 때 하는 사람, 어느 누가 무엇이 어떻고 저떻고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 주장할 때 딴 사람들처럼 무조건 아멘하며 박수치는 대신, ‘그게 아닐 건데라고 토를 다는 사람 말이다. 이런 사람을 세상에선 괴짜니 반골이니 이단자라 부른다.

 

내 둘째 딸이 뉴욕 줄리아드 음대 오디션에서 연주할 지정곡인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in Dvorak)의 첼로 협주곡을 러시아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연주 녹음한 CD를 주면서 참고로 들어보라고 했더니 미리 듣지 않고 오디션 끝난 후에 들어보겠노라는 딸의 반응에 나는 쾌재(快哉)를 불렀었다.

 

, 이제 글쓰기로 돌아가서 다시 좀 생각해보리라.

 

어려서부터 내가 발견한 것이 있다. 그 한 가지는 진짜로 중요한 일들은 말이나 글이 필요 없이, 말과 글 이전에 행동이나 존재 그 자체로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부모나 선생님 그리고 소위 성직자(聖職者)라 불리는 수많은 어른들의 말이나 글이 그들의 행동과 삶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They don’t practice what they preach.’이다.

 

또 어려서부터 내가 품게 된 의문이 있다. 글이란 왜 꼭 종이에다 연필이나 펜 또는 붓으로만 써야 하나.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난 차라리 보이지 않지만 너무도 실감 나는 인생이란 종이에다 삶이라는 펜으로 사랑의 피와 땀과 눈물이란 잉크를 찍어가며 써보리라고.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 삶을 결코 말이나 글로 때우면서 사는 흉내만 내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또 어려서부터 영웅전, 위인전, 소설책 또는 영화를 읽고 보는데 만족할 수 없어, 나도 책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 인물들처럼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리라,  아니 그보다는 소설이나 영화에도 없는 나 고유의 True Story를 엮어가며 살아보기로 작정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대학 다닐 때 일이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생으로 인하공대 학생회장이던 친구가 하루는 자기가 쓴 장편소설 이라며 날더러 읽어보라고 했다. 읽어보니 나를 주인공 모델로 쓴 것이 분명했다. 제 여동생과 나를 결혼시키려고 했던 친구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군에 있을 때 펜팔로 사귀던 아가씨는 나를 모델로 쓴 단편소설 푸른 제복의 사나이로 신춘문예에 입선해 작가로 등단했었고, 나와 헤어진 지 25년 만에 뉴욕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나 재혼해 10개월 같이 사는 동안 또한 나를 모델로 장편소설 꽃을 든 남자상하권을 썼다.

 

이런 아빠의 유전자 때문일까. 내 둘째 딸의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절대적인 사랑이야기가 2015사랑하면 산티아고로 떠나라, 그녀처럼이란 책으로 출간되어 한국출판문화상까지 받았다.

 

설혹 삶 자체가 꿈꾸듯 하는 환상(幻想)이고 환영(幻影)이라 하더라도 픽션(Fiction)이나 예술이란 삶과 자연을 모방하는 표절행위(剽竊行爲)로서 실물(實物)의 그림자에 불과하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실물을 제쳐 놓고 그 그림자를 쫓아가며 허깨비를 실물보다 다 애지중지(愛之重之)할 일이 아니리라.

 

이런 뜻에서 작가는 단순한 자연인이 아니다란 주장은 자연인들처럼 삶에 열중하지 않고, 사는 시늉만 하면서 마치 문화적인 특권층 귀족이나 된 양 행세하고 허세 부리는 행태라고 지탄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독일의 시성(詩聖)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가 설파했듯이 행동, 아니 실지로 드러난 행동인 행실(行實)이 전부이고 명예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The deed is everything, the glory naught)”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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